*
잠에서 깬 나는 어리둥절했습니다.
발목에 커다란 풍선이 매달려 있었으니까요.
어젯밤 일을 떠올려 보았지만 풍선을 매단 적은 없습니다.
떠오르는 것이라곤 작은 술집에서 그녀에게 이별을 고했다는 것,
그리고 그녀가 끝도 없이 눈물을 흘려 난처했다는 것 뿐이었습니다.
"그래, 알았어. 왜 헤어지자는 건진 묻지 않을게."
그러나 그녀는 내 입에서
헤어지고 싶어하는 이유가 백만 개쯤 나오기 전엔
결코 그치지 않을 기세로 눈물을 흘렸습니다.
우는 그녀를 택시에 태워 보내고
혼자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을 뿐인데
일어나니 처음 보는 풍선이 발목에 매달려 있는 것이었습니다.
황당한 일이었지만 일단 풍선부터 떼어놓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풍선은 너무나 단단히 묶여 있었습니다.
도무지 떼어낼 수가 없었죠.
가위라도 가져오려고 침대에서 일어나던 나는
나도 모르게 "악!" 하고 외쳤습니다.
방바닥에서 1cm쯤,
그렇습니다, 아주 낮은 높이었지만
나는 분명히 떠 있던 겁니다.
정확히 말하면 풍선이 떠 있고- 내 몸이 그 위에 얹혀 있었습니다.
한 발을 내딛어 보았습니다.
나는 여전히 떠 있는 채로 걷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붕 뜬 채로 부엌까지 걸어가 가위를 찾아
풍선을 매단 줄을 자르려 했지만, 좀처럼 잘리지 않았습니다.
'참, 터뜨리면 되겠구나!'
그러나 풍선은 가위로도, 드라이버로도, 식칼로도 터지지 않았습니다.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습니다.
혹시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닐까 싶어 창문을 열었습니다.
찬 바람이 집안으로 들어와 정신이 번쩍 들었지만
꿈이 아니란 사실을 더욱 확실히 깨닫게 됐을 뿐이었습니다.
바람에 밀려 풍선이 훅- 저만큼 날아갔고,
나는 속수무책으로 함께 날아가버렸으니까요.
출근 시각이 다가오고 있었지만
이런 상태로는 밖에 나갈 수 없었습니다.
나는 황급히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여보세요."
"나야. 내 발에 풍선이 달려 있는데 풀리지도, 터지지도 않아.
게다가 이것 때문에 둥둥 떠 있다구."
"그래."
"그래?"
태연한 그녀의 말투에 나는 화를 버럭 냈습니다.
그녀가 저지른 일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요.
"네가 달아놓은 거지? 아파트 열쇠라도 복사해 놓은 거야?
밤에 몰래 들어와서 묶어놓은 거냐고.
어떻게 떼어야 하는 건데? 이것 때문에 출근도 못하고 있잖아!"
"떼지 마."
"장난 그만 치고 빨리 말해 줘."
"떼지 마. 뗄 수도 없어. 넌 이제부터 풍선을 타고 다니게 될 거야."
"뭐?"
"나는 네가 풍선을 타고 다니면 좋겠어.
그러면 네가 날 떠나는 걸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을 테니까."
"……헤어지자고 한 건 미안해. 미안하다고 했잖아."
"이제 괜찮아. 네가 풍선을 타고 다니면,
난 네가 풍선 때문에 날아간 거라고 생각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그녀는 웃으며 노래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수화기를 든 채
그녀의 노래를 들어야 했습니다.
*
나는 네가 풍선을 타고 다니면 좋겠네
도시가 바둑판으로 보이는 상투적인 비행이 아니어도 상관 없겠네
나는 네가 그저 바닥에서 오 센티 아니 일 센티라도 떠 있으면,
발을 내딛지 않고 풍선을 타고 다니는 거라면 좋겠네
네가 사라져도 나는 너를 탓하지 않을 수 있겠네
나는 걱정스러운 듯 물어오는 이들에게
너는 날아간 거라고 태연스레 말할 수 있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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