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가와 시인들로 구성된 작은 집단인 방랑 연예인들은 마을을 돌며 실제 있었던 일을 시나 노래로 부르며 공연을 하였다. 보통 사람들은 이들로부터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나 알 수 있었다. 공연은 운율로 이루어져 있었고 반복적이어서 공연자와 관객 모두 쉽게 기억할 수 있었다.
이들 음유시인들은 가끔씩 서로 만나 이야기꺼리도 교환하고 자신들의 놀라운 기억력을 과시하는 일종의 시 경연회 같은 것도 펼쳤다. 머리 좋은 이들은 서너 번만 듣고도 수백 줄이나 되는 시 전체를 머릿속에 넣을 수 있었다. 한술 더떠 대학의 교사들은 제자들이 큰소리로 말하는 백 줄의 텍스트를 단 한번만 듣고서 암송할 수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뭐 대충 이런 식이었다는 ......
이처럼 읽고 쓸 줄 아는 사람들이 매우 드물었던 세계에서는 좋은 기억력이 필수였다. 왕의 전언을 직접 전해야 하는 조신들은 긴 전언을 말 그대로 암송하는 훈련을 받았다. 학자들 역시 값비싼 필기 재료들 때문에 기억 훈련이 필요했다. 그래서 당시의 문학 형태에는 쉽게 기억할 수 있게 압운의 형식을 띄고 있다. 14세기에 이르기까지, 법률적인 서류들을 빼놓고는 거의 모든 글에 압운이 쓰였다.
또한 학자들 사이에선 기억술이 수사학의 표제 아래 교육되었다. 그 교재로는 [헤레니우스에게 바치는 수사학]이라는 기억술 참고서가 쓰였다. 이 책은 ‘기억 극장’이란 테크닉을 이용해 엄청난 분량의 내용을 기억할 수 있는 기술을 담고 있었다. ‘기억 극장’이란 간단히 말해 머릿속에 가상의 극장을 만들고 요소들을 기억해야할 것과 연결짓는 것이다. 이러한 각각의 이미지들은 기억의 ‘대리물’ 역할을 했다.
이런 기억술의 기원으로 기원전 6세기에 살았던 그리스의 시인 시모니데스의 일화가 전해져온다. 시모니데스는 한 귀족이 베푼 파티에서 그 귀족을 찬양하는 시를 지어 낭송했다. 그러나 있는 놈이 더한다고 귀족은 시모니데스에게 원래 비용의 반만 준다. 시의 내용에 자신 뿐만 아니라 카스토르와 폴룩스라는 쌍둥이 신도 찬양했기 때문에 나머지 비용은 두 신에게 받으라는 핑계였다.
빈정상한 시모니데스는 파티장을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파티장은 폭삭 무너지고 만다. 시모니데스 만큼 빈정상한 쌍둥이 신이 파티장을 뭉개버린 것이다. 나중에 달려온 유족들은 시신을 수습하고자 하지만 너무나 피떡이 되어서 누가 누군지 분간할 수 없었다. 그런데 짠 하고 나타난 시모니데스는 집안 구조부터 누가 어디에 앉아있었는지를 완벽하게 기억해내어 유족들이 시신을 수습하는데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이 문제는 1970년대에 제록스 팔로알토 연구소Xerox PARC에서 최초로 개발되어 애플사의 매킨토시 컴퓨터에 의해 대중화된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GUI가 대성공을 거두고 널리 채택됨으로써 해결되었다. GUI의 등장으로 사람과 컴퓨터가 상호작용하는 방법이 극적으로 변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컴퓨터 사용 인구는 비약적으로 증가하게 되었다.
컴퓨터가 차지하는 책상 위 물리적 공간은 기껏해야 1㎥지만 그 컴퓨터가 품고 있는 가상의 공간은 어마어마하다. 누구나 자기 방에 알렉산드리아 도서관만한 데이터 공간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대부분의 컴퓨터들이 인터넷에 연결됨에 따라 우리가 접하는 데이터 공간이나 복잡한 네트워크를 ‘상상하는 것’이 매우 어려워졌다.
이런 시대에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는 현대판 ‘기억의 궁전’이다. 머릿속에 가상의 공간을 만들고 정보를 이미지화 시키듯이 GUI는 0과 1로 이루어진 사이버 공간을 이미지화 시켜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바꿔 주었다. 우리는 인터페이스라는 연결 통로를 통해 이 가상 공간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그의 위대한 기술 혁신은 ‘직접 조작’을 원칙으로 도입하고 있는데 이를 위해 1968년 그가 제시한 마우스는 현재 가장 중요한 인터페이스 도구가 되었다. 마우스 덕분에 우리는 정보 공간이라는 세계에 들어가서 그 안의 정보들을 조작할 수 있게 되었고, 이런 의미에서 마우스는 단순한 지시 도구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다.
공간의 개념이 기술에 의해 극적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기억의 궁전’은 이제 우리가 만질 수 있는 ‘현실의 궁전’이 되었다.
컴퓨터 스크린의 각 픽셀에는 메모리가 조금씩 할당되어 있다. 단순한 흑백 스크린에서는 이 할당된 조그만 메모리 공간이 컴퓨터 내부에서 0 또는 1을 나타내는 한 개의 비트다. 픽셀에 불이 들어오면 이 1비트의 값은 1이고, 픽셀의 불이 꺼지면 0이다. 컴퓨터는 스크린을 이와 같은 픽셀들이 가로 세로로 꽉 차 있는 2차원적 공간으로 인식한다. 처음으로 데이터가 물리적 공간을 갖게 되는 것이다.
전자가 컴퓨터 프로세서를 통해 왔다갔다 하면서 시각적인 이미지가 스크린에 나타나는, 물리적인 ‘동시에’ 가상적인 공간이 생긴 것이다.
- 참고 및 발췌 -
영진공 self_f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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