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 감독의 '하하하'가 아무리 유쾌하대도 관객이 꽤 들 영화는 아니다.
홍상수의 마니아가 분명 존재하지만 항상 그렇듯 폭발적 지지를 끌어낼 만큼 파워가 있어 보이진 않는다. 그의 팬임을 자처하는 나만해도 "하하하" 정말 좋지만 그렇다고누구에게든 추천하기엔 주저되는 부분이 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확실한 건, 거듭 될 수록 호기롭게 웃어젖히게 되는 그의 영화가 점점 더 좋아진다는 거다. 지지리 궁상의 여자들은 사라지고 쿨하게 젊은 남녀를 딸 아들 삼는 초로의 여인과, 바람 피고 모텔을 걸어 나오는 애인에게 "업어 줄게. 그냥 그러고 싶어서 그래." 라며 건들줄 아는 여성의 등장은 더욱이 반갑다.
영화는 하룻밤 섹스나 몰래한 키스 같은 일탈이 시각적으론 전혀 섹시하지 않더라도 야하게 느껴질 만큼 사건과 사고 속에 깊이 몰입하게 하는 힘이 있다. 영화적으로 과장하지 않았지만 평범함과 일상의 사이를 넘나드는 에피소드는 꼭 남의 것이 아니다. 영화를 본다는 것이 주인공을 들여다봄이 아닌 함께 빠져드는 황홀경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미안하지만 지금의 소년소녀들에게 그의 영화는 아직 이른 감이 없지 않다. 갓 스물을 넘기고서 홍상수 영화를 보기 시작한 내가 그의 초기 작품에 대한 감흥이 미미한 것도 아마 같은 이유이지 않을까.
세상과 술을, 남자와 여자를, 그들의 관계 얽힘을 조금 더 알고 봐야 제 맛이다.
'하하하'는 오래된 애인이랑 손 놓고 보며 제식대로 킥킥 웃거나, 설렘이 앞서 할 말을 잃게 만드는 상대와 데이트삼아 봐야한다. 다 본 후에는 '영화 좋았지?' 같은 한 마디로 끝내기엔 무지 아쉬우니 '자! 한잔해! 건배!' 를 위해 소주 한잔 하자며 어둑한 밤길을 걷는거다. 여기까지가 영화의 진정한 The End.
영진공 애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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