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편] 악몽

문예창작위 2008. 11. 7. 11:13


악몽


내 태몽은 귀신이었네.
어머니는 나를 밴 아홉 달 내내 끔찍한 악몽에 시달리다가
나를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신경쇠약으로 돌아가셨네.

나는 나와 같은 공간에서 잠자는 그 누구라도
소름끼치는 악몽을 꾸게 만드는 사람이라네.

아버지를 비롯해 그 어떤 친지도 나를 데리고 살려 하지 않았네.
어릴 적 학교에서 간 수학여행에선
첫날 밤부터 자다 일어나 울부짖는 아이들로 숙소가 뒤집어졌네.
군대에서도 쫓겨났네. 사고와 자살이 속출했으니 당연한 조치였네.
버스나 기차를 탈 수 없네. 한쪽에서 꾸벅꾸벅 졸던 사람이 비명을 지르며 일어나네.
구멍가게 안쪽에서 주인이 졸고 있으면, 전화를 걸어 깨우고 들어가네.

주어진 명줄이 있으니 어찌어찌 살아왔지만 너무나 외로웠네.
나는 누구의 옆에서도 잠들 수 없네.
잠든 누구의 옆에도 있을 수 없네.

지독한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개를 데려온 적이 있네.
개는 며칠 밤낮을 깨갱거리다 끝내 달아나 버렸네.
금붕어는 어항 밖으로 뛰어나와 죽는 편을 택했네.

사랑을 할 수 없었네.
연정을 품은 여인들이 있었지만 모두 떠났네.
밤을 보내면 밤을 보내서 떠났고
밤을 보내지 않으면 밤을 보내지 않아서 떠났네.

내 평생 다른 소원을 가져본 적 없네.
소원이라곤 단 하나라네.
누군가를 안고 편안하고 깊은 잠을 자고 싶네.
누군가와 평화롭고 조용한 밤을 보내고 싶네.
사랑하는 여인이 자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다 천천히 쓰다듬어 보고 싶네.

내가 마을과 이렇게 멀리 떨어진 곳에서 혼자 살고 있는 것
이렇게 깊은 숲속의 밤인데
이야기하는 동안 이 주위에서
부엉이며 산짐승, 벌레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것
모든 게 우연이 아니라네.

자,
여행으로 지친 자네
오늘 밤 근방에서 딱히 잘 곳이 없다는 건 알지만
하룻밤도 재워줄 수 없다고 거절한 건 그래서라네.
그러니 부디 야박하다 생각하진 말길 바라네.



영진공 도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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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owhere_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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