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 대한 불안이나 성장의 고통, 아니면 기성 세대와의 커뮤니케이션 단절은 십대 청소년기의 필수불가결한 요소인가? <린다 린다 린다>는 그런 극적인 갈등 요소들을 억지로 끌어당기지 않더라도 충분히 기억될 만한 멋진 영화 한편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인물들은 드러내놓고 화를 내거나 싸우지 않고 좋아하는 상대방에게 결국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한다. 3일 남은 시간 동안 학교 축제에서 공연할 노래를 밤 새워 연습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질문에 "별 의미는 없어"라고 대답한다. 인내심이 많은 카메라는 시종일관 주인공들을 따라다니며 말 없이 지켜만 보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시작된 공연. 마치 이 순간만을 위해 모든 것을 기다렸다는 듯 강렬한 전기 충격이 전달된다. 그 사이 카메라는 비 내리는 축제 마지막날의 학교 구석구석을 필름 위에 기록한다.
야구치 시노부의 <스윙 걸즈>가 한 잔의 청량음료 같이 개운한 영화였다면 <린다 린다 린다>는 비 오는 날 오후 잘 우려낸 '녹차의 맛' 같은 작품이다. 음악을 연주하고 싶은 마음을 전달하는 영화는 아니지만 누구에게나 한번쯤을 있었을 나의 십대 시절을 회상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이런 건 뭐하러 하나 싶은 일들로 가득했던 지루한 시간들이기도 했지만 지나고 나면 누구나 그때 만큼 좋았던 시절도 없었다고들 하지 않나. 오히려 좀 더 열심히 하고 싶었던 일을 많이 하면서 보내지 못한게 아쉬울 따름이다.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의 시선에는 바로 그런 속 깊은 성찰과 애정이 담겨있다. 그러면서도 함부로 개입하려 들지 않는 자세는 <린다 린다 린다>의 미덕이라고 할 수 있겠다. <플란다스의 개>, <고양이를 부탁해>, <복수는 나의 것>,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 이후 주춤했던 배두나의 필모그래피에도 멋진 작품이 하나 추가 됐다.
영진공 신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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