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말끔한 본드인 ‘피어스 브로스넌’에 익숙해진 관객들에게 느닷없이 ‘다니엘 크레이그’라는 험상궂은 금발 깡패를 본드라고 들이대는데 성공한 첫 번째 영화가 <카지노 로얄>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 지금 봐도 참으로 훌륭한 본드 영화입니다. 일단 영화의 시작 부분부터 참신하고 멋있죠. 영화는 본드가 이제 막 살인면허를 취득한 상태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는 지금까지 본 본드 영화의 출연진 소개 중에서도 가장 멋진 클립이 등장합니다. 트럼프 카드와 권총과 본드의 액션이 2D와 3D를 넘나들며 펼쳐지는 이 인트로는 정말 근사하죠. 그리고 이 인트로가 끝나면 정말로 우직하고 무지막지한 본드가 한명 튀어나와서는 이리저리 날뛰기 시작합니다.
http://kr.youtube.com/watch?v=59TSvb6PeMs
화질이 좀 구리다능 ...
화질이 좀 구리다능 ...
영화는 인트로부터 베스퍼에 대한 기억 혹은 악몽에 시달리는 본드를 보여줍니다. 근데 그게 좀... 사방에서 본드를 ?아다니는 거대한 모래 여인이라니... <미이라>의 한 장면 같기도 하죠.. 본편에서도 이 베스퍼의 이야기는 나머지 이야기와 그렇게 딱 어울리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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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포스터 감독, 본인도 질렸는지 다시는 007 영화 감독 안한다고 했다고 ...
물론 본드는 이번에는 제대로 제이슨 본에게 사사받은 듯 육해공으로 온갖 우직 액션을 보여주며 활약하지만 과거의 연인 베스퍼 이야기에 새로운 본드걸인 까밀(올가 쿠릴렌코)까지 등장하니 이게 서로 엉켜버리고요. 그 결과 영화는 전반적으로 과거에 붙잡혀버린 본드의 답답함을 벗어버리지 못하죠. 그리고 총기 애호가의 관점에서 봤을때도 이 두 번째 본드영화는 과거에 대한 집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 바로 그 이야기(뭔 이야기? 총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우선 질문, 제임스 본드의 권총은 무엇일까요?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당연히 월터 PPk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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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음기를 장착한 상태의 PPk
이 월터 PPk는 총기 개발사에 길이 남을 걸작품입니다.
독일의 칼 월터(독일어로는 카를 발터)사는 1930년대만 해도 그냥 그렇고 그런 쪼마난 호신용 권총을 만들어파는 작은 회사였습니다. 하지만 1차 대전 후 독일이 엄청난 경제난을 겪던 시절에 호신용총기 수출로 돈을 좀 만지게 되자 호신용을 뛰어넘어 군용 권총 시장까지도 넘볼 수 있는 신제품을 개발하기로 작정하죠. 당시 자동권총들은 주로 싱글액션이거나 안전장치가 부실해서 조작하기가 까다롭고 위험한 편이었습니다. 그래서 월터 사에서는 보다 안전한 더블액션 작동방식의, 디코킹과 방아쇠 잠금을 동시에 실행할 수 있는 레버를 장착한 권총을 개발하기로 합니다. 그것이 바로 월터 PP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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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시작, 월터 PP. PPk 보다 좀 큽니다
이 권총은 그 당시의 권총들 중에서는 그야말로 군계일학 이었습니다. 레버만 내리면 해머가 원상태로 복귀(디코킹)되면서 동시에 아무리 방아쇠를 당기거나 충격을 주거나 땅바닥에 집어던져도 절대로 발사가 되지 않는 거의 100% 안전한 권총. 하지만 레버만 원래대로 올려놓으면 언제든 방아쇠만 당기면 발사가 되는 매우 간편한 권총. 그것이 바로 PP였던 것이죠. 게다가 디자인까지 매우 멋진데다가 구조도 단순해서 제조하기도 쉽고 고장도 잘 안납니다. 이런 권총은 그 이전까지 없었습니다. 당연히 이 총은 개발되자마자 국제 총기시장에서 대박을 터트렸고, 독일경찰과 군장교용 권총으로도 채용됩니다. 원래 PP가 경찰용 권총의 약자였으니, 월터는 노리던 목표를 제대로 맞춘 셈입니다.
그 와중에 이 PP를 귀족들의 호신용 권총으로 팔기 위해 조금 더 작게 줄인 모델이 개발됩니다. 바로 그것이 PPk 죠. 여기서 마지막의 K는 독일어로 짧다는 뜻의 단어 kurz의 머릿 글자입니다. 이 꼬마 PP, 그게 바로 007의 손에 쥐어진 권총이었던 것이죠. 자그마치 1962년 숀 코너리가 쪼만한 베레타를 반납하고 월터 PPK를 지급받은 이후, 1997년까지 쭉 그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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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프레임(아랫부분)은 PP이고 총신과 슬라이드(윗부분)만 PPk를 끼운,
그러다가 피어스 브로스넌이 양자경과 함께 등장한 1997년의 007 영화 <투모로우 네버다이>부터 본드는 예전의 작은 호신용 권총 월터 PPK를 버리고 월터 P99를 쓰기 시작합니다. 적어도 <카지노 로열>까지는 그랬죠. 이건 나름 적절한 변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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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월터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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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PPk는 다 좋은데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거든요.
첫째, 장전되는 탄약의 숫자가 적습니다. 딱 7발 들어가죠. 하지만 007의 적들이 쓰는 권총은 기본 13발에서 15발 혹은 17발이 들어가는 전투용 권총들이니 일단 실탄 숫자에서 밀립니다.
둘째, 탄약의 위력도 약합니다. .32 Auto라는 탄약을 주로 쓰는데, 이 총알은 호신용으로야 어떨지 몰라도 적들과의 과격 액션을 즐기는 본드에게는 좀 부족한 면이 있죠. 요즘이야 전투용 권총은 9mm 파라블럼(우리나라 군도 사용하는 나토 공통 제식권총탄약, .32 Auto보다 많이 강합니다.)이나 .45 ACP(미국의 콜트 45에 사용되는 9밀리 파라블럼보다도 좀 더 크고 강한 권총탄약) 정도가 기본이니까요.
이런 면에서 테러가 난무하는 21세기 본드에게는 작고 약한 호신용인 PPk보다는 같은 월터사에서 21세기를 위해 만든 전투용권총 P99가 어울리죠. P99는 전투용권총의 기본규격인 9밀리 파라블럼탄을 16발 장전할 수 있고 플라스틱 몸통을 사용해서 무게도 가벼운 최신형 전투용 권총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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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Pk 에 들어가는 .32 Auto(본드가 쓰는)와 P99에 들어가는 9mm Parabellum의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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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탄약의 위력비교, 참고로 이 그래프의 설명에 따르면 .32 Auto는 그저 없는 것보다는 나은 수준이고 .380 ACP(나중에 미국에 팔때쯤 추가된 탄)은 전투용 무기로서의 위력을 간신히 발휘하는 탄이라고 평합니다.
그리하여, 본드는 <투모로우 네버다이>이후로 어언 18년간이나 P99를 사용해왔습니다. 그러다가 이번 영화 <퀀텀 오브 솔러스>에서 그는 무슨 마음을 먹었는지 갑자기 PPk 로 되돌아 간 겁니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요? 분명히 이 영화는 전편에서 몇 분후의 이야기라는 설정이니 전편에서 쓰던 권총을 계속 쓰는 것이 맞는데 말이죠.
아마도 감독의 고집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포스터 감독은 의외로 “역시 007은 PPk!” 라는 지론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르고, 혹은 고전적인 007 로 되돌아가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죠. 어쨌거나, 덕분에 우리는 우락부락한 다니엘 크레이그가 조막만한 권총을 들고 날뛰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건 어떻게 보자면 꽤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자면 상당히 어색하고 답답해 보이기도 합니다. 이 영화 전체가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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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역시 본드 영화에는 좀 더 경쾌한 감독이 어울린다능..
그리고 21세기 본드에게는 역시 P99라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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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이게 어울림
덧붙여, 마틴 캠벨 최고!
하지만 캠벨 수프는 짜서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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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진공 짱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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