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이


사람들은 대개, 어른이 되어 무언가 큰 일을 해내면 신문에 오릅니다.
그게 훌륭한 일이든, 못된 일이든 간에 말입니다.
때로는 어린 나이에 어른 못지 않은 일을 해서 신문에 오르는 경우도 있지요.

아이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지만
태어나자마자- 정확히 말하면 생후 일주일만에- 신문 지면을 장식했습니다.
쓰레기통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보육원에서 자라는 동안 아이를 주목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아이는 남다를 것 없었으니까요.
특별히 예쁜 외모도 아니었고,
유난히 말을 잘하는 것도 아니었고,
공놀이나 노래, 그림 그리는 재주 따위가 신통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아이가 잘하는 것은 단 하나, 무엇이든 잘 먹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썩 귀여움 받을 수 있는 재능은 아니었습니다.
보육원의 사정이란 뻔한 것이어서, 오히려 아이의 식탐이 커질수록
보모들의 표정은 어두워졌던 것입니다.

"어린애가 어쩜 이렇게 잘 먹는다니?"
하며 신기해하던 보모들은, 이내
"어린애가 어쩜 이렇게 많이 먹는다니!"
하며 꿀밤을 때리게 되었습니다.

아이는 네 살이 되자 남자 어른보다 많이 먹게 되었습니다.
여섯 살이 되자 남자 어른이 먹는 밥의 세 배는 먹게 되었습니다.
일곱 살이 되자 이제 얼마나 먹을 수 있는지 알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배불리 먹을 때까지 밥이 나오는 일이 없어졌거든요.

아무리 먹어도 허기가 가시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아이는, 자기가 무언가 먹어치울 때마다
어른들의 표정이 무섭게 변하는 것이 슬펐습니다.
할 줄 아는 거라곤 잘 먹는 것 뿐인데
이것으론 귀여움을 받을 수 없으니 어떡하나요.

그날도 아이는 모두 잠든 밤에, 배가 고파 일어났습니다.
살금살금 부엌에 갔지만 먹을 것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밤마다 다음 날 식사꺼리를 모두 해치우곤 하는 아이 때문에
보모들이 음식을 감춰놓았기 때문입니다.

아이는 허기를 달랠 생각으로 숟가락을 빨았습니다.
숟가락이 막대사탕이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세차게 빨던 아이는 깜짝 놀랐습니다.
숟가락이 목구멍 깊이 들어가버렸기 때문입니다.
손을 넣어 빼내보려 했지만, 이미 저 아래로 내려가 버린 뒤였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기도 하지요.
조금도 거북하지 않았거든요.
쇠로 만든 숟가락을 삼켰는데, 배가 아프긴커녕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그날 밤 아이는 숟가락 열 두 개와 젓가락 열 두 벌,
접시 여덟 개를 먹어치웠습니다.
무엇이든 입에만 넣으면
힘들이지 않아도 꿀떡꿀떡 잘도 넘어갔습니다.
다음 날 아침, 식기들이 사라진 것을 발견한 보모들이 법석을 떨 때
아이는 다른 아이들 틈에 누워서 편안히 잠자고 있었습니다.

그 후로 며칠 지나지 않아
의자 스무 개, 책상 일곱 개, 벽시계 두 개,
청소솔과 대걸레를 먹어치웠을 때쯤, 아이는 들키고 말았습니다.
사실 아이는 아무리 배가 고파도- 다른 아이들을 생각해
동화책과 인형, 텔레비전과 축구공 같은 건 결코 먹지 않았지만
그건 아무도 칭찬해주지 않았습니다.

"맙소사! 이애는 괴물이야!"

아이는 신나게 두들겨 맞고 보육원에서 내쫓겼습니다.
뒤늦게 아이를 방송국에 제보해
돈 벌 궁리를 해낸 원장이 아이를 찾아 나섰지만
이미 아이는 멀리 가버린 후였습니다.

아이는 자신의 유일한 재주로는 사랑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이 슬펐습니다.
거리를 떠돌면서 어떡해서든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려 애썼지만
아이가 뭔가를 먹어치우면, 어른들은 칭찬 대신
비명이나 욕설을 퍼부을 뿐이었습니다.

어느 밤, 아이는
골목 구석에 주저앉아 술을 토해내고 있는 남자를 보았습니다.
남자는 아이를 힐끔 돌아보곤 저리 가라 턱짓했습니다.
그러나 아이는 멀리 가지 않고 남자 주위를 맴돌다가
근처에 있는 가로등을 먹었습니다.
가로등 불빛 때문에 남자가 창피해할 것 같았으니까요.

아이는 여느때처럼 잽싸게 도망갈 자세를 잡았지만
남자는 너그러운 표정으로 아이에게 손짓했습니다.
사실 그게 다- 그가 몹시 취해 있었기 때문이지만
아이는 감격하고 말았습니다.

"분명히 가로등이 있었는데. 네가 먹은 거 같다?"
"……네."
"내가 잘못 본 거 아니지? 네가 먹은 거 맞지?"
"네."
"으하하하, 굉장하구나!"

남자는 껄껄 웃으며 아이를 와락 끌어안았습니다.
가슴팍에 토사물이 묻어 있었지만, 아이는 그런 것 따위 괜찮았습니다.

"또 뭘 먹을 수 있는 거냐?"

아이는 처음 듣는 칭찬에 들떠, 근처에 있던 자전거며 쓰레기 봉투,
어느 집의 우편함과 대문 손잡이까지 먹어치웠습니다.
남자는 줄곧 감탄 어린 눈으로 아이를 지켜보다 말했습니다.

"자, 이제 기억을 먹어 봐! 부탁이야!"
"어디 있는데요?"

남자는 자신의 이마를 탁 치며 말했습니다.

"이런! 기억이 어디 있냐고? 그런 말도 안 되는 질문을 하다니.
내가 말해줄게. 다 말해줄테니까, 다 먹어주렴.
난 지금 이놈의 기억들 때문에 괴로워 죽겠단다."

그리고 남자는 자신을 괴롭혔던 기억들을 중얼중얼 내뱉기 시작했습니다.
아이가 그것을 남김없이 받아 먹은 것은 물론이고요.
동이 터올 무렵 남자는 세상에서 가장 홀가분한 표정으로 골목을 떠났습니다.

아이는 자신을 반기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무척 기뻤습니다.
그날 이후 아이는 슬픈 표정으로 혼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 그들은 처음에 뭘 먹어보라고 하든
결국은 기억을 먹어달라고 청하곤 하는 것이죠.

그러니 당신이 슬프고 또 슬픈 날, 공원 의자에 혼자 앉아 있을 때
꼬마 아이가 다가와 말을 건다면, 매몰차게 밀어내지 말고 이야기해 보세요.
그 아이가
바로 기억을 먹는 아이일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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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진공 도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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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owhere_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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